옛날 부산사람들의 한과 신명 '수영야류''

부산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무형문화재가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고,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나 형태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내가 과연 부산 시민으로의 자격이 있나' 하는 부끄러움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산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재의 하나인 수영야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수영야류란 수영구 수영동에 전승되어 오는 민속가면극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야류란 야유(野遊)란 말이 변하여 된 것으로 넓은 들판에서 노는 놀음, 즉 들놀음의 한자어로, 안놀음, 자리판놀음에 대응되는 말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수영야류는 약 200년 전 좌수영 수사(水使)가 합천 초계(草溪) 밤마리(율리:栗里)의 대광대패를 데려다가 연희를 시킨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한편으로 수영사람이 큰 장터인 밤마리에서 보고 온 후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밤마리는 낙동강변의 수로의 요지로 인근 군으로부터 산물을 집산하는 하시(河市)였으므로 사당패와 같은 놀이패가 있을 수 있었거니와 수영 역시 좌수영의 소재지로 이러한 공통점이 있다면, 밤마리 대광대패의 전파가 손쉽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뒤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산신제(山神祭)와 함께 거행되어 그 해의 만사형통을 빌었다. 송석하의 '오광대소고(五廣大小考)'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말까지 자주 공연되던 것이 1930년대에 일제의 탄압으로 단절된 후 광복후 한 때 부활되었으나 중단되었다가, 1960년대에 들어 수영야류의 전통을 이어온 수양반역의 최한복(崔漢福)(1895∼1968년)과 말뚝이역의 조두영(趙斗榮)(1892년∼1964년)의 구술과 증언으로 재연되어 1960년 수영고적민속보존협회가 발족되었고, 74년 9월에 전수관이 완공되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놀이의 내용은 전·후편으로 구별되는데, 전편은 길놀이, 군무 및 잡희로 이루어지고 후편은 탈놀음으로 구성된다. 탈놀음은 총 4과장으로 구성되는데 제1과장은 양반과장으로 수양반, 지차, 셋째, 넷째 양반과 종가도령이 나와 양반의 무지함을 드러내고 하인 말뚝이가 등장하여 양반들의 허세와 무능을 조롱하고 종국에는 수양반 부인을 농락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계급타파와 신분해방을 부르짖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제2과장은 영노과장으로 무엇이든 다 먹으며 양반 99명을 잡아먹어 1명만 더 먹으면 득천한다는 영노가 나와 수양반과 어르다 결국 잡아먹는다. 수영의 영노과장은 다른 영노과장과 달리 비비양반이 나오지 않고 수양반이 나온다. 그리고 수양반이 잡아먹히기까지 한다. 이것은 수영지역이 당시 양반의 권세가 약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고, 양반과장에서 통쾌한 조롱과 야유에도 만족하지 못한 민중들의 울분의 노골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제3과장은 영감, 할미과장으로 영감이 데리고 온 첩 때문에 할미와 다투게 되고 영감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할미를 때려 결국 죽인다. 봉건사회의 일부다처제에 따르는 가정불화를 주제로 하여 처첩의 삼각관계로 인한 가정비극과 곤궁상을 나타낸 것이다.
제4과장은 사자과장으로 사자가 등장하여 춤을 추고 있을 때 담비(혹은 호랑이)가 나와 사자를 놀리다 결국 잡혀 먹힌다. 사자과장은 흔히 수영의 앞산 모양이 사자가 등을 지고 달아나는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이를 달래기 위해 담비를 제물(祭物)로 바치는 양식을 띠고 있다. 사자무를 마치면 연희는 모두 끝나게 되어 배역들은 고사를 지내고 가면을 소각하면서 제액과 만사형통의 행운을 축원한다

위의 내용을 보면 수영야류는 조선 후기 당시의 사회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는 봉건사회의 모순이 극대화되던 시기로서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런 모순점들이 드러나게 된다. 그 중에서 특히 심했던 것이 바로 신분제의 문제였을 것이다. 수영야류는 이런 신분제의 모순과 유교적 가부장제 하의 사회 문제들에 대한 당시 민중들의 울분과 저항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중들의 의식성장은 결국 봉건사회를 막을 내리게 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는 우리 힘으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일제에 의해 지배당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수영야류에 대한 글을 적으며 나 자신도 그 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던 우리 지방의 문화에 대한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수영야류는 단지 예능 공연의 한 형태라기 보다는 부산 사람들의 옛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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