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푸근하게 우릴 기다리는 '금강공원'

필자가 어린 시절 어린이날만 되면 엄청나게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곳이 있었다. 바로 금강공원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부산시내 인근에 변변한 놀이시설 하나 없던 시절이라 금강공원 관람이야말로 최고의 어린이날 선물이 되곤 했다.

온천장에서 망미루를 지나 파전 굽는 냄새 맡으며 흥분된 마음으로 올라가던 금강공원을 정말 오래간만에 가보았다. 이제는 공원 앞으로 우장춘로가 생겨 그 전과는 사뭇 다른 공원의 대문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공원을 들어서는 순간 마치 시간이 20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이 어릴 적 내가 그토록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던 시설물들이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내게 놀이기구의 공포스러움을 가르쳐 주었던 회전 그네도 그대로 있고 분수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오르락내리락 하던 신기한 탁구공이 인상적이던 공기총 사격장도 그 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다른 놀이 기구들도 새로 생겼지만 하나같이 조금은 낡은 모습이라 마치 내가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착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반가워해야 할지, 아니면 쇠락해가는 금강공원의 모습에 안타까워해야 할지 모르는 묘한 감정이 느껴질 때쯤 주위를 둘러보니 금강공원은 그때처럼 여전히 많은 부산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서론이 너무 길지 않았나 싶어 금강공원에 대한 본격적이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금강공원의 '금강'이라는 말은 금정산 산세의 수려함이 마치 작은 금강산과 같다하여 신라 때부터 소금강이라 부르게 된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공원 내에는 유서 깊은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우리는 그저 금강공원을 등산로나 산책로 또는 놀이공원쯤으로 생각하여 이런 유적들을 그냥 곁눈으로 흘깃 쳐다보고 지나치기 일쑤이지만 그 유래를 알고 보면 동래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유적들이 대부분이다.

먼저 금강공원이 시작되기 전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주는 망미루를 보면 1742년 (영조 18년)에 당시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동래부 청사 동헌 앞에 세웠던 문루(門樓)로서 누 위에는 동래 4대문의 개폐와 정오를 알리는 큰북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 때 시가지 정리에 따라 금강공원 입구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관아(官衙)의 문루이고 전면에 '동래도호부문(東萊都護府門)', 후면에 '망미루(望美樓)'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공원 내로 들어와서 케이블카 승차장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면 동래독진대아문이 있는데 이는 원래 동래부 청사의 동헌 앞 대문으로 망미루 뒤쪽에 있었던 것을 일제 때 시가지 정리라는 명분하에 망미루와 함께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금의 금강공원내의 숲 속으로 옮겼다. 이 건물은 1626년(인조4년)에 동래부사 정양필(鄭良弼)이 건립하였으며 그 뒤 몇 차례 중수하였다. 이 대문에는 1655년(효종6년)에 동래부의 군사권(軍事權)이 경상좌병영(慶尙左兵營) 휘하 경주진관(慶州鎭管)에서 독립하여 동래독진(東萊獨鎭)이 되었음을 알리는 동래독진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 이란 현판이 정면의 문 위에 걸려 있으며, 그 아래 양쪽 기둥에는 진변병마절제영(鎭邊兵馬節制營)과 교린연향선위사(交隣宴餉宣慰司)라 쓴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주련의 뜻은 동래부는 진변(鎭邊)의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의 영(營)이란 말과 또한 대일외교(對日外交)에 일본 사신(使臣)을 접대하는 관청이라는 것으로서 당시 동래부의 군사적·외교적 중요성을 말해주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동래독진대아문에서 내려와서 동물원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임진동래의총이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오자 동래부사 송상현과 함께 동래성을 지키다가 순국한 군관민의 유해를 거두어 모신 무덤이다. 1731년(영조7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동래읍성을 수축할 때, 격전지였던 옛 남문터에서 많은 이의 유골이 포환, 화살촉과 함께 발견되었다. 그 중 형골이 완연한 유해 12구와 잔해를 거두어 남쪽 삼성대의 서쪽 구릉지(현재 내성중학교 부근)에 여섯 무덤을 만들어 안장하고 임진전망유해지총(壬辰戰亡遺骸之塚)이란 비를 세웠다. 그런데 이 역시 일제 때 시가지 정리라는 명목으로 동래구 복천동 뒷산 영보단(현재 시립박물관 복천분관내) 부근에 이장하였다. 이러던 것을 1974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 정화하면서 매년 음력 4월15일 동래구에서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이 이외에도 동래부사 정언섭이 동래읍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내주축성비와 지금의 안락동에서 연산동으로 갈 때 건너던 3개의 아치를 연결한 돌다리인 이섭교의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이섭교비, 부산·동래 지역에 계승되는 전통문화의 전승사업과 전수를 하는 부산 민속회관, 부산 해양자연사 박물관 등이 많은 볼거리들이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근 십 수년만에 찾아간 금강공원은 이토록 옛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건만 그 동안 내가 너무 무심한 것이 아니었나 싶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앞으로는 자주 이곳을 찾아 금정산에도 오르고, 동래의 옛 역사도 만나겠노라 다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성 막걸리 냄새나는 파전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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