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승 선생님의 교단일기 4

                                2004학년도의 또 다른 시작!

벌써 네 번째인가? 벌써 소식지 원고를 써야하나? 참 빠르다. 교단일기를 쓴 게 3회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여러 사람들로부터 반응이 들어왔다. '감동적이다. 구라(일본말을 써서 죄송)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폭력을 미화하지 마라' 등 참 여러 가지다.  반응을 들을 때마다 똑같이 드는 느낌은 매우 부끄럽다는 것이다. 마치 나의 치부를 들킨 것처럼. 그래서 지금도 글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국장님의 얼굴이 무서워 무식하게 써보고자 한다.

2004학년도(학교에서는 년도보다 학년도라는 개념을 더 많이 쓰는 건 아시죠)가 시작된지도 벌써 한달이 다 넘어간다. 올해는 2학년 6반의 담임을 맡았다. 처음 상견례 때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나는 평생 그토록 쫄아 있는 애들은 처음 봤다.(지금까지 교단일기를 계속 읽으신 분들은 그 이유를 잘 아시겠죠? 정 궁금하시면 메일로 문의를 해주시던지요. parkddung@hanmir.com ) 우스워 죽겠는데 표정관리 하면서 1년 동안 어떻게 살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온갖 협박을 늘어놓았다. 더욱 더 긴장하는 아이들. 그 당시 우리 반 교실은 엄청난 무게의 고요와 공포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채 지나지 못한 지금 우리 반 애들은 내 배를 예사로 만지고 지나간다. 우찌 이런 일이! 내가 올해부터 새로운 교사로 거듭나기로 했냐고? 천만에 그냥 나의 본질을 아이들이 빨리 알아버린 것뿐이다. 심지어 우리 반에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는 "야이 멧돼지야!"라는 천인공노할 패륜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별로 기분이 안 나쁜 건 왜일까?

얼마 전 가정방문이 있었다. 요즘 다른 학교에서는 가정방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마도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일거다. 우리 학교가 있는 지역은 그따위 촌지와는 거리가 먼 지역이라 가정방문이 계속 되었었는데 선생들이 하도 피곤해해서 몇 년 실시하지 못하다가 올해부터 다시 실시하였다. 나로서는 이 학교에 와서 처음 해보는 가정방문이었다.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그런 복잡한 마음을 안고 가정방문 길에 나섰는데 솔직히 충격을 많이 받았다.

우리 반에는 생활보호대상자가 없고, 급식 지원을 받는 아이들도 3명밖에 없어서 다른 애들은 그럭저럭 형편이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다 쓰러져 가는 단칸방에 사는 애가 없나, 아직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애도 있고(그 애의 지능은 정상이다), 가정방문 갔더니 아버지가 술에 취해 주정을 하고 있어 부랴부랴 나오지 않나, 아빠는 막노동, 엄마는 심장병으로 투병 중인 아이도 있고, 이혼한 집은 부지기수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정은 우리 반 전체 인원 중에서 3분의 1일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난 다음날 아침 애들을 보니 어찌나 측은해 보이던지. 나는 지금까지 그런 애들에게 공부 안 한다고, 못한다고 협박하고, 패고 했으니 과연 내가 선생인지 심각하게 반성이 되었다. 그런데 그 놈들은 여전히 맑고 밝은 얼굴로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예들아 이 못난 선생을 용서해라. 내 본뜻은 그게 아니었단다."란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저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나의 두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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