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분과 자료실

2009/07/01 (15:40) from 58.233.207.239' of 58.233.207.239' Article Number :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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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쌍용차 파업, 그 의미와 해법

‘MB정치’ 혹은 ‘MB가치’가 무엇인지, 아니면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도무지 알기 어렵다. 경제를 앞세워 집권한 지난 1년 반 남짓 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은 경제라기보다, 과도한 적대와 배제의 정치였다. 특히 그 정치는 4개의 주공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이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둘째는 촛불시민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비롯, 「PD수첩」에 대한 무리한 기소가 단적인 표징이다. 셋째는 북한이다. 북한을 정면 겨냥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는 한반도를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넷째는 노동자, 도시 서민들이다. 용산 참사가 이를 입증한다.

  - ‘서민위한 정치’ 검증의 시금석

그러므로 지금까지 이 정부는 다분히 뉴라이트적인 공격적 보수주의와 적대감 속에서 이들 4대 주적(?)을 철저히 배제, 억압하겠다는 ‘복수열전’의 정치를 해 온 셈이다. 그 결과 정치는 실종되고, 정책은 실패하고, 소통은 부재한 가운데 민주주의의 위기는 나날이 증폭되어 왔다. 최근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쌍용차 파업사태 역시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첫째,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서민을, 실용을 들고 나섰다. 쌍용차는 그래서 MB정치의 진정성을 검증해볼 시금석이다. 왜냐 하면 쌍용차 노동자들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중소도시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또 쌍용차 노조 역시 결코 전투적이지도 이념적이지도 않은 노조였다. 그런 노조가 장기파업을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노·사·정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를 정부는 ‘알아서 하라’고 냉소한다. 사용자는 노를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 쳐서, 필요하면 슬금슬금 용역깡패를 ‘산 자’ 앞에 세워 ‘죽은 자’를 진짜 죽음으로 내몬다. ‘죽은 자’는 그렇게 하루하루 죽고, 이들에겐 매일이 ‘용산’이다. 지금 쌍용차에 필요한 것은 경제논리에도 맞지 않는 정리해고도, 공권력도 아닌, 공적 자금이다.

둘째, 론스타 외환은행이 금융 ‘먹(고)튀(기)’의 대명사라면, 쌍용차는 제조업 ‘먹튀’의 표본이다. 쌍용차가 중국 상하이차에 헐값 매각된 이후 기술 유출 우려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당시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 혈안이던 정부는 이 거래를 놓고 환호작약했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정부는 엄연히 책임 당사자다. 아울러 저간의 사정은 매각 당시 주무장관이던 정세균 현 민주당 대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쌍용차 문제의 해결은 지난 정권에는 과거의 짐을 내려 놓는 일이 될 것이고, 지금 정권에는 서민경제 살리기뿐만 아니라 새로운 투자, 산업정책을 세워나가는 출발점이 된다. 그러기에 여야가 함께 나서야 한다.

  - 공적자금으로 살린뒤 되팔길

셋째, 금융위기 이후 파산위기에 몰린 미 자동차 빅2를 위해 버락 오바마 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이 현재 174억달러(약 14조원) 규모이다. 오바마 정부의 자동차 태스크포스(TF)가 노사간에 확고하게 방향타를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퍼붓겠다는 정부가 1조원 아니 그 절반만 있어도 회생이 가능한 쌍용차를 방치하고 있고, 온갖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있을지 몰라도 MB정부에 쌍용차 TF가 있다는 소식은 못들어 보았다. 미국에서는 GM사 노조의 상급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의 ‘개입’은 당연한데, 우리의 금속노조가 소속 노조인 쌍용차를 지원하면 졸지에 ‘외부 불순세력’으로 치부된다. 같은 자동차 제조업을 놓고 달라도 너무 다른 한·미 간의 대응이라 할 만하다.

쌍용차 문제에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사서, 곧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정상화시킨 다음, 국민에게 되팔아라. 재원은 4대강 사업자금에서 약 2%만 빌려 오면 된다. 그러면 사람이 살 수 있다.

  = 이해영 / 한신대 교수 국제관계학 =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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