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분과 자료실

2010/02/24 (19:16) from 61.76.212.159' of 61.76.212.159' Article Number : 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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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낙동강, 아직 희망은 있다

낙동강에 다녀왔다. 대운하니 4대강이니 하는 얘기가 나올 때부터 충분히 예상한 바이지만 그 실상을 보고서는 내 몸이 찢기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능지처참이란 것이 동서남북을 향한 네 마리의 말로 온몸을 찢는 것이라고 하던가? 그러나 낙동강은 동서남북의 구분도 없이 전방위로 온몸을 찢기고 있다. 저 아름다운 내성천의 황홀한 해질녘도, 회룡포의 깊은 순환의 풍경도 없어진다. 굽이도는 모든 곡선의 자연스러움이 파괴되고 전체주의적인 직선의 독재 같은 인조의 물줄기가 생긴다. 강변의 모래톱조차 볼 수 없고 그 위를 걷는 새나 동물들의 발자국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지듯 저려왔다. 옛 선비들은 쉼없이 그저 흘러가는 강을 바라보며 삶을 깨달았는데 이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영원과 유장을 노래할 수 있을까? 시멘트와 철골로 담은 인조의 좁은 직선 물통을 바라보며 우리의 자식들은 과연 무엇을 노래할까? 이제 자연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없어지고 있다. 저 인공 속에서 어떤 인간이 가능할까? 저 인공 속에서 과연 인간이 살아갈 수나 있을까?

이는 손익계산 따위의 수치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내가 목격한 상주와 안동의 낙동강은 수백대의 중장비에 의해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파헤쳐지고 있었다. 눈에도 보일 정도로 얕은 모래 강바닥을 배가 지나도록 깊이 파내고 시멘트로 인조 강둑을 만들며 강 중간중간에 보를 쌓아 물을 가두고 그 주변을 인조생태공원 등의 관광단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자연 파괴다.

  - 전방위로 찢겨지는 ‘강변의 추억’

강의 파괴만이 아니다. 그 주변의 습지나 농지나 산야도 파괴되고 있다. 그곳에서 수천만년을 살았던 모든 생물들이 파괴되고 있다. 수초도 갈대도 파괴되고 있다. 잔물결의 별빛도 없어지고 있다. 습지의 나무도 숲도 파괴되고 있다. 그 속에 살던 왜가리도 백로도 수달도 고라니도 파괴되고 있다. 그리고 인간들도 파괴되고 있다. 돈에 미친 인간들이 그 터전을 파괴하고 자신까지 파괴하고 있다. 아, 이제 강까지도 돈으로 처바르다니, 길도 산도 들도 다 돈으로 처바르더니 이젠 마지막 남은 강까지 타락시키려고 하는가? 지금 마지막 자연이 파괴되고 있다.

자연이 만든 곡선의 핏줄인 강과 그 주변 습지를 다 끊고 드러내 파괴하고 인조의 직선 시멘트로 강을 다시 제조하고 완전히 반생태적인 관광단지를 조성하여 모든 강변을 돈으로 타락시키려 하면서 자연이니 생태니 운운하는 것은 광기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볼 수 없다.

이처럼 낙동강의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면서도 그것을 권력과 자본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녹색뉴딜 낙동강 살리기’라고 맹렬히 선전하고 있다. 상주역에도 안동터미널에도 온통 그런 선전물이다. 국가와 자본의 합동 선전, 합동 사업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국적으로, 파괴적으로 행해진 적이 또 있었는가? 권력과 자본이 강을 사살하고 실개천을 살해하며 강물을 죽이면서, 생동하는 낙동강이니 맑은 물의 회귀니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 아닌가? 녹색 낙동강 살리기 유토피아가 아니라 핏빛 낙동강 죽이기 디스토피아를 감행하면서 유토피아니 천년 비전이니 행복이니 삶의 질이니 함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 아닌가? 지금 낙동강이 핏빛 깃발들을 꼽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다. 누가 관광을 강간이라고 잘못 발음했다고 하던가? 바로 자연의 강간이 백주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낙동강을 살리기 위해 그 짓을 한다고들 한다.

  - 파괴되는 강, 목격하고 지키자

시애틀 추장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강은 우리의 형제다. 강은 우리의 목마름을 달래주며 우리의 논밭을 살게 하며 우리 아이들을 먹여 살린다. 그러니 형제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친절하게 강을 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강은 형제이기는커녕 원수다. 아니 강이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 우리가 강을 원수처럼 파괴하고 있다. 이제 강변의 추억이란 없다. 그 모든 추억은 저 중장비에 의해 묻혀버린다.

아, 그래도 잊지 말자. “강의 잔물결 소리를 듣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전히 절망하지 않는다”는 소로의 말을. 그러니 모두들 강으로 가자. 파괴되는 강을 목격하자. 그리고 강을 지키자. 마지막 남은 자연을 지키자. 아직은 희망이 있다.

  = 박홍규 / 영남대 교수·법학 =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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