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분과 자료실

2010/03/09 (09:38) from 58.233.249.196' of 58.233.249.196' Article Number : 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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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님은 공짜 점심 먹어봤나요”

베이비붐 세대가 초등학생이던 1960년대 우리나라는 무척 살기 어려웠다. 점심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가 많았다. 학교에서는 이들을 위해 큰 가마솥에 강냉이가루죽을 끓였다. 강냉이가루는 미국에서 보내준 원조식량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빈 그릇을 들고 ‘줄지어’ 죽을 타 먹었다.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들도 더러 그 죽을 먹고 싶어했다. ‘별미’에 대한 호기심에서였다. 도시락을 얼른 먹고 깨끗이 씻은 뒤 ‘가난한 친구’에게 죽을 타오길 부탁했다. “두 번 타다 들키면 큰일 난다”고 해도 조르고 또 졸랐다. 당시는 친구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 짓인지 몰랐다.

무상급식이 정치권의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지난해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뒤 추진하면서 불을 지폈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은 공약으로 채택한다는 방침이지만 여권은 반대하고 있다. 무상급식 논란이 요란한 것은 반대하는 세력 때문이다. 이미 전국에는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부분적으로, 또는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자치단체가 많다. 자치단체장의 소속 정당과도 관계가 없다. 시행 과정에 큰소리도 나지 않았다. 자치단체가 주민들의 뜻을 읽고 따른 결과다.

초·중학교 무상급식의 당위성은 먼저 무상급식이 무상교육에 포함된다는 데 있다. 초·중 교육이 의무교육으로 무상으로 제공된다면 점심 한끼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가 무상급식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가의 책임과 의무 방기다. 무상급식이 정상이고, 현재와 같은 선별적 무료급식은 비정상적이라고 봐야 한다.

  -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에 포함

어린아이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해서라도 무상급식은 이뤄져야 한다. 부모의 경제력 때문에 점심을 공짜로 먹는 아이들이 치러야 하는 고통은 너무 크다. ‘가난한 아이’라는 사회적 낙인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급식비를 못내 머리를 숙여야 하는 아이도 많다. 당해보지 않으면 그 심정을 모른다.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의 학생은 어른과는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

무상급식은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준다. 저소득층이 아닌 서민에게 무상급식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부자들에게 무상급식의 경제적 효과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복지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데 있다. 보편적 복지가 주는 특별한 맛이다. 늘 세금만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복지 혜택의 누림을 조금은 실감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은 복지를 보는 눈이 확 달라지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여권은 무상급식에 대해 ‘사회주의적 발상’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반서민적 정책’ ‘부자급식’ 같은 꼬리표를 달면서 반대한다. 국가가 경제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시혜라도 베푸는 듯한 선별적 무료급식이 옳다고 주장한다. 세상도, 국민의 의식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지만, 그들은 가난했던 개발연대의 사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예산이 없어 곤란하다는 주장은 오히려 순진한 편에 들 정도다. 그러나 전국 자치단체의 무상급식 현황을 보면 재정여건과 관계가 없다. 무상급식에 대한 자치단체의 시각이 중요할 뿐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재정적 여유가 있어야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한다면 영원히 못할지도 모른다.

  - ‘시혜 받은’ 아이들 아픔도 배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제2차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취업정책 자료를 보면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한 번도 일자리 걱정을 안 해본 엘리트들이 만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진정으로’ 역지사지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그런 마음이 초·중학교 무상급식 문제에는 스며들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복지예산 증액이 어려운 만큼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이미 전면 무상급식 불가 지침을 내렸으니 여권의 행보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무료급식을 먹는 아이들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나요?”

  = 노응근 / 경향신문 논설위원 =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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