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분과 자료실

2011/04/29 (15:35) from 61.76.212.86' of 61.76.212.86' Article Number :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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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미화씨를 떠나 보내며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시커먼 일자 눈썹의 순악질여사는 개그우먼 김미화의 이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가 2003년에 국제문제와 시사문제를 다룬다는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용된 것은 파격적인 시도였다. “서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시사 프로그램” “보통사람들을 위한 교양 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출발한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이후 8년 동안 김미화가 아니면 빚어낼 수 없는 고유한 색깔을 가진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김미화의 키는 153㎝라고 한다. “153㎝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계와 우리”라는 방송의 기획 의도에서 보듯이, 김미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눈높이 시사 교양’이라는 정체성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같이 있어왔다. 각 현안의 전문가들을 데려다놓고 하는 인터뷰에서 “아, 잘 몰라서 여쭙겠는데요”라는 김미화의 멘트는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상징해 주는 것이 되었다.

낮은 눈높이에서 시작한 김미화는 지난 8년 동안 성장하고 깊어졌다. 김미화의 푸근하고 구수한 진행에 익숙해져 갔던 대중의 사회적 의식도 같이 성장하고 깊어졌다. 김미화가 스스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겠다고 선언한 뒤 청취자들은 게시판에 편안하고 따뜻한 방송이었다, 평범한 우리와 같은 사람의 시선에서 함께 세상을 보는 창이 돼 주었다, 많이 배우고 공감하고 웃었다는 말들로 떠나는 김미화를 아쉬워했다.

  - ‘소외층과의 공감’ 불편해 한 그들

같은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을 아침에 진행하는 손석희 교수는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가장 부러운 프로그램 중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우리 프로그램에서 말씀 안 하시던 걸 김미화씨 프로그램에서 시원하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진행하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평했다. 지난 8년 동안 김미화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 내공이 따뜻하고 여유로운 그의 진행 솜씨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다. 그래서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라고 시작되는 김미화의 질문에는 역설적으로 항상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대부분의 청취자들은 이어지는 질문들을 통해 김미화가 누구보다도 그 사안에 대해 잘 준비해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친근하고 넉넉하게 눈높이를 걸어놓는다.

김미화가 스스로 설정한 이 눈높이를 얼마나 능란하게 운용했는지는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받은 몇 가지 평가지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단 한번도 동시간대 청취율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광고판매율은 매년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중 1, 2위를 유지했다고 한다. 라디오 진행자 선호도에서도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얼마 전 시사저널이 실시한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연예인으로서는 유일하게 10위권에 들었다.

  - 문화방송의 명예는 누가 지키나

김미화는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주류 출신이 아니다. 뒤늦게 다시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여상을 졸업한 뒤 조그만 여행사에서 경리일을 보다가 코미디언으로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눈높이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그가 가지는 소외된 계층의 삶에 대한 공감은 구체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들은 그래서 김미화가 불편했을까? 우리는 이제 김미화를 문화방송 라디오에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김미화의 퇴출은 얼마 전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이 보도본부장과 라디오본부장을 포함한 주요 간부들을 임명할 때 예견된 것이었다. 이들은 퇴출되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진행자, 사실상 경영과 내용 면에서 가장 기여도가 높은 진행자를 모욕적인 방식으로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사장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임명된 경영진과 본부장이 있는 방송에서는 더 이상 김미화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권력은 점점 더 후안무치해지는데, 공영방송인 문화방송의 명예는 누가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 여건종 | 숙명여대 교수·영문학 =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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