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분과 자료실

2011/09/30 (16:08) from 61.76.185.119' of 61.76.185.119' Article Number :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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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가수 그리고 ‘어머니와 고등어’

<나는 가수다>(나가수)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가수> 출연자들에게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부르라고 하면 어떤 노래가 나올까? <나가수>의 노래는 하나같이 절창이었다. 가수들은 결코 평범하게 부르지 않았다. 노래에 전류가 흘렀다. 듣고 있으면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카메라가 객석을 비출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 청중이 보였다. 손가락을 물고 있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성도 있었다.

“다 아는 노래들인데, 참 다르게 부르는구나….”

인순이의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아니었고, 윤민수의 ‘그리움만 쌓이네’는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가 아니었다. 사랑의 고통을 그린 노래를 부른다고 치자. 오랫동안 사귀어온 여자를 부모가 반대해서 마음 아프다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 평생 몸바쳐 온 사람을 땅에다 묻는 처절함이 배어났다. 이별의 노래라고 하면, 연인을 전쟁터에라도 보내는 수준으로 감정을 집어넣었다. 도입부는 잔잔한 시냇물처럼 시작하다가도 클라이맥스는 폭포처럼 웅장해졌다. 가수들은 감정을 증폭시키는 ‘앰프’였다. <나가수>에선 노래의 감성이 원곡보다 2배, 3배 청중에게 전달되는 듯했다.

이런 <나가수>에서 ‘어머니와 고등어’를 부른다면?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편곡을 한다 해도 담담한 일상 이야기가 얼마나 바뀌겠어. 자반고등어가 돔베기(상어고기)가 될 수는 없잖아….” “아냐, 편곡 실력을 보면 뭐든지 그럴싸하게 해낼 거야. 남진의 ‘님과 함께’나 구창모의 ‘희나리’를 그럴싸하게 바꿔놓은 걸 보면 간단치 않아….”

<나가수> 출연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노래는 ‘어머니와 고등어’처럼 소소한 생활, 잔잔한 삶을 다룬 노래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가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고, 아무리 잘 불러도 누군가 한 명은 떨어진다. 평범하고 잔잔하게 청중에게 다가가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원곡 그대로 불러도 안된다. 김건모가 그렇게 부르다 똑 떨어졌다. 출연자들은 무대에 선 5분 남짓 동안에 청중의 가슴을 무조건 흔들어야 했을 것이다.

한참 <나가수> 노래를 듣고 있을 때 아내가 말을 걸어왔다.

“얘 외국어고 보내려면 원서도 잘 써야 한대. 지원 요령 가르쳐주고, 원서 쓰는 법 알려주는 학원이 있다는데, 등록할까?” “아니, 무슨 원서 쓰는 법까지 가르쳐주는 학원도 있어?” 그때 갑자기 회사 동료의 말이 머리를 스쳐갔다. “딸아이 친구가 이번에 대학 수시모집에 지원하는데, 라면박스로 4개 분량의 활동 기록을 제출했단다. 입학사정관이 그걸 다 읽어보기나 할까?”

요즘 세상도 <나가수>처럼 서바이벌 게임이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하고, 취업문이 좁다 보니 대학생들은 학점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직장인들은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고보니 톱스타 인순이조차 <나가수>에서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이런 독백을 했다.

“내 나이 오십 즈음에 난 달리고 있어. 목적지도 모르는 채,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한 채,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모르는 채 난 달리고 있어….”

가을이라서 그런지 문득, 옛날 노래들이 그리워졌다. 단박에 마음을 흔들지 않고 느려도 여운이 오래 남는 그런 노래 말이다. “꼬마야 꽃신 신고 강가에나 나가보렴….” 가만, ‘산울림’ CD가 집구석 어딘가 있을 텐데….

  = 최병준 / 경향신문 사회부 차장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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