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분과 자료실

2010/08/17 (11:33) from 61.76.184.73' of 61.76.184.73' Article Number : 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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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중 힘겨루기와 민족의 생존

올 여름 열흘간 베이징에 머물면서 한·중 관계에 대한 ‘불편한 진실’과 마주쳐야 했다. 천안함 침몰사건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이후 불거진 한·중 갈등은 단순한 일회성 마찰이 아니라 돌이키기 힘든 구조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보였다. 한 중국 학자는 “이제는 중국 내에서 반일감정보다 반한감정이 더 심한 듯하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 뒤에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사실(fact)에 대한 시시비비보다 인식(perception)이 국제관계에서 더 중요한 작용을 하기도 한다. 한국과 미국은 연합군사훈련과 미 항공모함의 서해 파견을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응하는 조치라고 역설하지만, 중국 지도부가 한국에 대해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비수’ 역할을 수행한다고 인식한다면 한·중 관계는 ‘구조적 갈등관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급속도로 심화된 한국은 이 같은 상황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강대국 미국과 중국이 개입된 대리전 및 국지전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흥 강대국의 등장과 기존 강대국의 쇠퇴라는 ‘권력전이’(power-transition)론은 역사상 신·구 강대국들 간에 발생한 무력충돌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반목의 위험성에 주목한다. 19세기 말 쇠락하는 영국과 떠오르는 독일이 중심이 된 1·2차 세계대전, 1870년의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 1905년 러일전쟁 등이 ‘권력전이’를 배경으로 발발했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 이후 더욱 강해지고 자신감이 넘치는 중국내 강경파의 주장과 ‘시간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미국내 강경파의 조급한 목소리는 이러한 권력전이론의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도 신·구 강대국들이 국제질서 주도권 장악을 두고 대립·경쟁하는 과정에서 주변 약소국은 이들이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빠져들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아시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은 곳은 대만, 남중국해, 한반도이다. 그러나 대만과 남중국해는 독립과 영토분쟁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직접 충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면 한반도는 현재 군사적 충돌의 긴장감이 가장 고조되고 있는 지역이다. 신·구 강국들이 서로의 의지와 힘을 검증해볼 수 있는 대리전이나 국지전이 한반도 주변에서 발발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의 번영과 영속이 지켜지기 위해선 한국 내부의 단결뿐 아니라 남북한의 화해·상생 노력이 절실하다. 남북이 분열되어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격변하는 천하질서에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비운의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조선은 17세기 초 명·청 교체기에 쇠퇴하는 패권국 명나라 중심의 세계관에 함몰돼 신흥패권국 청나라와 갈등을 빚다 병자호란을 맞았다. 청나라에서 서구열강으로 힘의 중심이 이동하는 19세기에는 새로운 천하질서에 연착륙하지 못해 망국의 노예로 전락했다.

순환 반복은 역사의 법칙인가. 지금 미국과 중국 두 거인의 힘겨루기가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역, 이념, 계층의 벽을 넘어 ‘민족 생존’이라는 절대과제의 역사적 책임이 우리 손에 넘겨졌다. 민족의 생존과 번영은 감성의 문제도 역사의 문제도 아닌 가장 절실한 현실이며,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근본 울타리다.

  = 손인주 / 홍콩대 교수·정치행정학 = (경향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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