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분과 자료실

2010/08/17 (11:36) from 61.76.184.73' of 61.76.184.73' Article Number : 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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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역사를 기억해야 새로운 미래도 있다

몇 주 전 일본에 갔을 때 야스쿠니를 방문했다. 방문할 때마다 야스쿠니는 항상 평범하지 않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더했다. 전쟁에서 희생된 말(馬)과 개(犬)를 추모하는 추모비가 새로 선 것도 그렇지만, 마침 신사 옆 박물관에서 가미카제(神風) 전시회를 하는 것 역시 그랬다. 가미카제는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을 침략했을 때 불었던 바람을 일컫는다. 일본을 위기에서 구해 준 신의 바람이라는 것이다. 지금 후쿠오카 시립박물관은 몽골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성곽 뒤에 건립되어 있고, 박물관 안에는 일본 해군이 몽골·고려 연합군을 물리치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 신의 바람은 1945년 일본 패망 직전 다시 부활했다. 신이 바람을 일으켜주지 않자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고자 했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젊은이들을 자살특공대로 동원했다. 이들이 몰고 가는 비행기가 미국의 구축함이나 항공모함에 부딪쳐 일으키는 바람이 미군의 일본 상륙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조선의 젊은이들 역시 ‘자원’이라는 명분으로 동원됐고, 조선의 부일협력자들은 이들을 찬양했다. 이제 그 자살특공대가 몰았던 비행기가 전시되고, 이를 기념하는 영화까지 만들어져 DVD로 팔리고 있었다.

  - 피해자는 과거사 잊기 힘들어

문득 몇 년 전 회의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난 한 학생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대부분의 일본 젊은이들은 과거 일본이 한 일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 대학생들은 과거 일본의 전쟁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으며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그 평화의 소중함은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에서부터가 아니라 원자탄 피폭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한국 사람들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한국 사람들은 언제까지 일본 총리의 반성을 원하느냐고.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거쳐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일본 총리의 사과를 거듭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었다.

그렇다. 90년 일왕 아키히토로부터 시작해 93년 호소카와 총리, 95년 무라야마 총리, 98년 오부치 총리, 2005년 고이즈미 총리, 그리고 며칠 전 간 나오토 총리까지 지난 20년 동안 일본의 고위 지도자가 6차례에 걸쳐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점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더 많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거듭되는 지도자들의 저자세에 대해 짜증을 낼 만도 하다. 그러나 이번 간 총리의 발표에서도 나타나듯 가해자와 달리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과거를 잊기 힘들고,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에 대한 평가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친일 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가 만들어졌던 것이며, 간 총리의 담화를 긍정 평가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의 불행은 원자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19세기 이래 제국주의적 팽창에서 시작된 것이다.

  - 독도문제 등 확실한 매듭 필요

이명박 대통령은 그제 8·15 경축사를 통해 간 총리 담화에 화답했다. “진일보한 노력”으로 평가하지만 “넘어야 할 과제가 아직 남아” 있으며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도 함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억해야 하며, 무엇이 넘어야 할 과제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이 ‘통일세’라는 화두 속에 한·일 간의 현안은 모두 묻혀 버렸다.

한·일 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한·일 협정이 개정되어야 한다. 과거 조약의 무효 문제는 한·일 협정에서 해결되어야 했던 문제다. 양국의 대표는 ‘이미’라는 애매한 문구로 과거 조약에 대한 해석 문제를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르게 해석하도록 허용했다. 협정 개정시 독도 문제를 비롯한 징용, 위안부 피해자 등 과거 문제에 대한 확실한 매듭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할 문제도 있다. 북송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일본으로의 재송환을 원하는 재일조선인 문제가 대표적 사안이다. 그리고 한·일 관계 문서들을 공개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미래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더 이상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로 대부분의 과거사위원회가 그 활동을 종료했다. 아직도 많은 의문들을 남겨 놓은 채로.

  = 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경향신문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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