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분과 자료실

2010/12/04 (11:25) from 58.233.249.230' of 58.233.249.230' Article Number :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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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필연을 우연이라 우기는 정부

1597년 음력 9월16일(양력 10월25일) 오전 11시께에 해남군 송지면 어란진에 정박해 있던 왜선 133척이 명량(울돌목)으로 들어선다. 그들은 육상으로 침략하는 본대에 보급품을 전달하기 위해 시급히 서해로 빠져나가야만 했다. 8월29일부터 벽파진에다 진을 치고 있었던 이순신 장군은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그곳이 지형과 해류 때문에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하루 전인 9월15일에 우수영이 있는 문내면 녹진으로 옮겨와 적정을 살피고 있었다. 해적 출신인 왜의 해군총수 구루시마도 이순신 장군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불안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조선 수군이라야 기껏 판옥선 12척이 전부였기 때문에 남동쪽에서 순풍으로 작용하는 밀물을 잘 활용한다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공명심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진도와 가장 가까운 거리가 293m로 사리 때는 조류의 시속이 20㎞에 달해 ‘바닷물이 우는 바다인 울돌목’은 전승지의 요건과 사지의 악조건을 동시에 갖췄다. 함포로 무장한 우리 해군은 적진 분산을 노려 ‘일자진(一字陣)’으로 대오를 형성하고, 요동치는 해류와 함포에 타격을 입어 본진에서 이탈한 적선을 집중공략하는 전술로 적군을 괴멸시켰다. 예상한 대로 오후 1시가 되자 조류는 썰물로 바뀌고 적에게는 역류가 되어 우리의 전력을 강화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 쳐놓은 철쇄를 팽팽히 걷어올려 적함을 격파시킨 것은 바로 그 상황이었을 것이다. 4시쯤 구루시마의 참수한 목을 돛대에 효수하자 혼비백산한 왜군은 퇴각하고, 명량은 다시 포효했다. 두 달 전인 7월22일에 삼도수군절도사에 복귀한 이순신 장군의 지략에 따른 승리는 필연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엔 우연을 필연이라, 필연을 우연이라 하며 책임을 전가하려 발버둥치는 선무당들이 있다. 2010년 11월17일, 남한강 이포대교 부근 4대강 공사현장 이포보(댐)에서 도하훈련을 하던 공병대의 소형단정이 울돌목과 같은 협류를 통과하다 전복되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필사적인 사업으로 파놓은 함정에 휘말려 장병들이 청춘의 꿈을 접은 것이다. 군 당국은 죽어간 그들을 향해 “중대장의 지시에 반해 단정에 탑승하여 도하하다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파렴치하고 비겁한 변명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앞서, 8월31일 여주보 가물막이 공사장에서 주민이 탄 고무보트가 전복되어 익사한 사건, 9월15일 이포보 공사장에서 인부가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한 사건에 이어, 며칠 전 11월29일 강천보 공사장에서 철관에 머리를 맞은 인부가 사망한 사건 등 예견된 필연 앞에서, 정부의 선무당들은 이 모든 참사를 우연한 사고라 한다.

게다가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빌미로 맹목적 적개심을 자극하려는 여당대표가 포격에 불탄 보온병을 양손에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외치는 개그를 보면서 우리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옆에서 대표를 보좌한 육군 중장 출신 정책위부의장은 작은 통과 큰 통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이것은 76.1㎜짜리이고, 이것은 아마 122㎜ 방사포”라는 전문성으로 배꼽을 더 빼놓는다. 여당대변인은 백주 대낮에 연출한 ‘개그 콘서트’에 면목이 없었던지, “긴박한 현장에서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또 우연 타령을 한다. 솥뚜껑만 보고도 놀라 남 탓만 하는 병역면제자의 필연적 경거망동이 슬플 따름이다. 하지만 그들의 광대짓에 넋은 놓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한눈 파는 사이 4대강 예산, 민간인 사찰, 불법적 대포폰 사용에 대한 비난여론에서 그들이 빠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 류점석 / 비교문학자 =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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