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분과 자료실

2011/04/08 (17:31) from 61.76.212.46' of 61.76.212.46' Article Number :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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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日 원전 재앙과 4대강

우디 앨런의 영화 <환상의 그대>는 4명의 남녀가 겪는 좌충우돌을 통해 인생의 부질없는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그 가운데 로이는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아내의 벌이에 의지하면서 글쓰기에만 매달려온 무명작가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투여한 작품을 몇몇 출판사에 보내고 연락을 기다리는데, 친구 톰이 자기도 소설을 써보았다면서 평을 부탁해온다. 로이는 깜짝 놀란다. 너무 훌륭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의 원고는 모든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온다. 톰이 다른 동료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충격은 잠시. 로이는 대담한 범행에 나선다. 톰의 집에 잠입해 습작 원고를 훔쳐다가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 것이다. 대박이 나고, 하루아침에 유명작가로 돌변한다. 그런데 기세등등하게 친구들 앞에 나타난 로이는 거기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죽은 사람은 다른 친구였고 톰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고 한다. 처음 소식을 전했던 친구가 너무 다급했던지라 그만 이름을 뒤바꿨던 것이다.

넋이 나간 로이는 친구들에게 이끌려 병원을 찾는다. 친구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톰에게 말을 건네면서 손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한다. 놀랍게도 톰은 반응을 보인다.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들은 로이에게 그의 소설이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톰에게도 전하라고 재촉한다. 그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얼빠진 모습으로 입원실을 빠져나온다.

  - 재난 뒤엔 인간의 빗나간 욕심

파국은 대개 여러 가지 사태들이 맞물리면서 일어난다. 그 가운데 한 가지만 달랐어도 무사할 수 있었다. 로이의 경우를 보자. 그의 소설이 출간되어 호응을 얻었다면, 출판이 좌절되었을 때 작가의 꿈을 깨끗이 접었다면, 톰이 그에게 미발표 원고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톰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친구가 사고 소식을 전할 때 이름을 헷갈리지 않았다면, 음흉한 상상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면, 범행과정에서 발각되었다면, 톰의 작품도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면, 톰이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죽었다면, 로이는 파멸의 늪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탐욕이다. 매사가 그러하다. 일본의 원전 사고를 보자. 지진과 쓰나미는 불가항력의 재난이었다. 그런데 원전이 멎었을 때 자산의 손실을 염려해 우물쭈물하다가 대응시기를 놓친 것, 늑장보고와 정보 은폐로 국민들의 불안을 키운 것 등은 온전히 사람의 오류다. 지식이나 기술의 한계로 어쩔 수 없이 당한 재난의 경우 책임자를 비난하기 어렵다. 반면에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자료를 왜곡했거나 태만을 부렸을 경우 화살은 관련 전문가나 담당자에게 돌아간다. 천재(天災)는 사람들을 결속시키지만, 인재(人災)는 갈등을 일으킨다.

한국은 지진 같은 대형 재해의 위험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천혜의 금수강산을 마구잡이로 겁탈하면서 섬뜩한 재앙을 자초한다.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궤멸된 생태계가 앞으로 인간과 문명에 어떤 반작용을 가해올지 아무도 모른다. 수자원학회는 지난해 말 4대강 사업에 관여한 회원들에 대한 향후 책임문제를 내부에서 심각하게 논의한 바 있다고 한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돌아가면 정치인, 관료, 전문가, 몇몇 언론사는 오리발을 내밀며 서로 ‘네 탓’ 하기에 급급할 것이다.

  - 자연 앞 ‘파국의 묵시록’ 들리나

로이의 스토리와 일본의 원전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파국의 묵시록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의 이면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진처럼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은 많지 않다. 재난의 상당 부분은 사람의 빗나간 욕심에 깊숙하게 닿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필귀정의 말로를 애써 외면하거나 은폐할 뿐이다. 그러나 시간은 무섭다. 영화 속에서 혼수상태에 있던 톰의 의식이 되돌아오듯, 강물은 깨어난다. 산하는 살아 움직이며 외칠 것이다. 인간의 추악한 탐욕을 증언할 것이다.

  =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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