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분과 자료실

2011/08/12 (17:13) from 61.76.184.194' of 61.76.184.194' Article Number :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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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브레이비크, 한국 사회를 조롱하다

북유럽 노르웨이와 동북아 대한민국 사이에 단지 7시간의 시차만 있는 게 아니다. 순식간에 70여 인명을 앗아간 오슬로 테러의 주범이자 극우 정당 당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흥미롭게도 “정치 체제에 관해서라면, 나는 특히 일본, 한국, 대만의 방식을 선호한다”고 했다. 반면, 한국의 꼴통 세력을 제외한 웬만한 자유주의자나 진보 세력은 복지국가의 여러 모순점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북유럽 복지 체제를 선망해 왔다. 섬뜩하다. 평범한 이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라 칭송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이로부터 추앙 받다니.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한국 사회는 바로 그런 수구 꼴통들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꽤 많다. 이 점에서 브레이비크는 한국 사회를 냉철히 비추는 거울이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사회인가?

그에 따르면 우선, 한국 등 세 나라는 “다문화주의를 완전 차단하고 단일문화체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을 잘 모를 것 같은 그가 지난 10년 이상 계속된 한국의 ‘다문화사회’ 정책들의 허구성을 통찰하고 “다문화주의를 완전 차단”함으로써 “단일문화체제를 잘 유지”했다고 평가한다. 놀랍다. 수시로 ‘불법’ 이주노동자들을 비인간적으로 사냥해온 대한민국 법무부에 이는 칭찬으로 들릴지 모른다.

‘단일문화체제’라는 것도 웃긴다. 나는 ‘민족’이나 ‘단일’과 같은 개념이 ‘상상적 허구’라는 데 동의한다. 한국도 노르웨이도 이미 온갖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지 않나? 중요한 건 부모, 형제, 친구, 이웃 등 구체적 관계를 소통과 공존으로 잇는 것이다. 국적, 인종, 지역, 학벌 등에 이름을 붙여 내부로 똘똘 뭉치되 외부로 배타성을 보이는 거야말로 파시즘의 뿌리다. 브레이비크의 무자비한 공격성도 바로 이와 연관 있다.

그는 또, “한국 등 세 나라는 구미 각국에서 교육, 과학, 기술, 경제 등 각종 이로운 것들을 도입하되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를 잘 차단했다”고 강조했다. 이미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도 강조한바 1880년대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과도 통한다. 또, 미세한 차이는 있어도 조선의 김홍집 등 ‘동도서기론’이나 김옥균 등 ‘변법자강론’과도 통한다.

그런데 이 모두는 ‘강자 동일시’에 다름 아니다. 주어진 사다리 질서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되 ‘내부의 적’을 섬멸하는 것이다. 필시 이것은 민주주의와 다양성, 참된 행복을 해친다. 세계 최고 자살률이나 스트레스를 자랑하는 한국, 일본이 바로 그 증거다.

다음으로 그는 “여전히 개선점은 있지만 그들은 세계에 잘 적응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실은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뜻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미 일본이나 한국에서 보듯, 경제적 성공과 일반 시민의 행복은 완전 다르지 않던가? 나라가 부자라고 모든 개인이 부자인 건 아니며, 부자라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치열한 경쟁에 직면한 농산물 자본가, 브레이비크의 눈에 세계시장에서의 성공은 부러움의 대상이고 자국 정부에 귀감의 대상인지 모르나, 그건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치른다.

노동자의 과로와 산재, 이주민 억압, 여성과 비정규직 차별과 억압 등이 바로 그것이다. 브레이비크 같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식 흑백논리자에게 노동권, 여성권, 이주권, 환경권, 사회권 등 다차원적 사회 정의는 ‘내부의 적’일 뿐이다. 그러니 수십 명을 조준해 학살하고도 수치심이 없다. 문제는 이런 철학의 소유자가 ‘극우 정당’에 대거 몰려 있고 상당한 시민들도 이들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그는 또한, ‘만나고 싶은 인물’로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 외에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들었다. MB도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개인적 희비 문제가 아니다. 독일의 홀거 하이데 교수도 강조한바, 브레이비크 테러는 “자본의 이윤 시스템이 내재적으로 가진 모순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은폐됐다가 마침내 폭발한 사건”이기에 전 사회적 구조 변화 없이는 결코 희망이 없다. 모순투성이 한국 사회를 성찰하게 한 브레이비크의 7·22 테러, 절대 잊어선 안된다.

  = 강수돌 / 고려대 경영학 교수 =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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