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분과 자료실

2011/11/25 (17:27) from 61.76.212.94' of 61.76.212.94' Article Number : 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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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미FTA 손익계산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의 강행 처리로 국회에서 비준돼 한국사회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불확실성의 세계로 던져질 위기에 직면했다. 국민의 공공선을 심각히 훼손할 수 있는 대외조약을 컵라면 4분 날치기로 통과시켰으니, 이는 실로 이명박·박근혜 일파의 합작으로 이뤄진 대국민 쿠데타, 신자유주의 신묘늑약(辛卯勒約)이다.

국가적 중대사를 이토록 다급하게, 사회적 합의도 없이, 오로지 다수당의 힘으로 강행했다는 것은 통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의회(議會)는 의논하는 모임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는 의회가 아니다. 집권당이 자기들 배 채우려 장사하는 상회(商會)다. 그들의 시선으로 보면 한·미FTA는 그토록 앙모해 마지않던 시장왕국, 자본천국을 가져다주는 신비로운 물건이니 진정 신묘성약(神妙聖藥)이다.

현재 정부여당과 보수언론, 경제단체들이 한·미FTA의 득실을 따지는 방식은 ‘총량적 접근’이다. FTA 체결로 한국 경제의 수출과 성장이 늘어날까 줄어들까, 어떤 부문이 유리하고 어떤 부문이 불리할까 등등.

이 접근은 한국경제 혹은 각 부문을 지배하는 대기업들의 손익이 국민 개개인의 손익과 일치하는 것처럼 기만하는 이데올로기다. 국내총생산이나 수출입총액 등 총량적 정보는 이득과 손실의 불평등한 분배를 은폐한다. 그동안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낮은 수준이 아니었고, 수출증가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이득은 온전히 재벌과 부자들의 몫이었다. 국민들의 일자리와 살림살이는 악화되기만 했다. 한·미FTA 해서 한국 대기업들, 승산 있다. 그런데 그게 중소기업, 중산층, 서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한·미FTA의 득실을 따지는 ‘국민의 시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미FTA에 따르는 이익과 위험이 다양한 계층들에 어떻게 분배될지를 물어야 한다. 한·미FTA로 시장을 완전 개방하고 규제를 철폐하면 승자독식 구조는 더욱 견고해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류층과 중산층·서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위험의 불평등한 분배도 깊어진다. 서비스가 모두 상품화되고 주요 공공부문이 사유화되면, 돈 있는 사람만 인간답게 살 수 있다. 한·미FTA는 한국경제를 몰락시키는 게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의 복리와 안전을 몰락시킨다.

또한 한국정부와 투자자본 간의 힘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가 문제다. 한·미FTA는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 한국의 법과 정책 때문에 직간접적 손실을 입었다는 이유로 제소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2009년 독일정부는 스웨덴 에너지회사로부터 독일 환경규제법에 의한 투자손실을 이유로 2조원 이상의 배상소송을 당해 엄청난 ‘뒷돈’을 지불한 바 있다. 한·미FTA 체제에선 투자자의 절대적 우위 하에 대한민국의 입법·사법·정책주권이 심각하게 제한받거나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눈으로 득실을 따져야 한다. 한·미FTA 때문에 한국의 대기업들이 휘청거리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집값, 땅값이 떨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심각한 고위험, 무규제, 불평등 사회로 변모할 것이고, 우리 사회의 ‘보장된 계층’과 ‘보장되지 않은 계층’의 명암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한·미FTA의 ‘득’은 거대 투자자본과 큰 손들에게, ‘실’은 일자리, 집값, 교육비로 허덕이는 청장년층,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한·미FTA는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한국의 법과 정부, 의회가 무력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국민의 안위를 위한 공적 개입을 금지하고 투자자본의 리스크를 최소화해, 모든 위험과 비용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미FTA와의 싸움에서 국가주권, 정책주권, 인민주권은 하나다. ‘공’을 지키고, ‘민’을 지켜야, ‘돈’의 지배를 막아낼 수 있다. 모든 권력은 돈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 신진욱|중앙대 교수·사회학 =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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